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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08 16:13
Evangelise always – if necessary use words (Archbishop's Message)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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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이 메시지를 읽을 때, 저는 아마도 로마 사도좌 방문을 마치고 호주로 돌아오는 길에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지난 가톨릭 보이스(2019년 6월)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호주의 도전적인 사회 문화적 상황이 우리 앞에 전개된다 하더라도,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가 받게 될 가장 큰 격려 가운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가톨릭 교회는 복음화에 관한 가르침에 있어 황금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대해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톨릭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어떤 형태의 개종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가톨릭의 복음화는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절기와 올바른 때에 예수님을 제안하는 것이지, 강요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최근 교황님은 복음화에 대해, 그리스도를 말보다는 “매력으로” 제안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향기로 세상을 “향유”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했듯이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 2,15).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 성인(1181-1226)은 다음과 같이 유익한 말로 제안했습니다. “예수님을 선포하십시오, 필요하다면, 말씀을 사용하십시오”.

호주의 주교단이 최근에 로마에서 한 것(사도좌 방문)처럼, 여러분도 주요 바실리카(대성당) 순례를 함으로써 언어가 아닌 복음화의 또 다른 면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건축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영원한 신비를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성 베드로 대성전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바티칸 언덕 묘지 위에 세워졌습니다. 베드로 대성전은 잔혹한 놀이를 하면서 그리스도인을 처형한(베드로 사도 포함) 네로의 서커스라 할 수 있는 로마 제국 향락의 정점에 세워졌습니다. 지금까지도 볼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은 베드로 광장 중심에 있는 거대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입니다.

오벨리스크는 수천년 동안 인간의 활동(기원전 약 2,500년)을 조용히 지켜보는 “눈”처럼,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영원히 다스리신다고 쓰여진 토대 위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 위(꼭대기)에 올려져 있지요. 이는 영원한 구원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오벨리스크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증거입니다!

또한 로마의 많은 성당들은 로마제국의 고대 유적지에서 가져온 대리석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바실리카(대성전)들도 당시 이교도 신들의 사원 위에 지어진 것입니다. 이교도 사원을 파괴해서는 안됐지만, 때로는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로 바꾸어 사용하였습니다.(예, 모든 신을 모시는 성전 중의 성전인 판테온, 이집트 여신 이지스에게 봉헌된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이들(대성전, 바실리카)은 말없이 선포하는 것이지 그리스도교가 강요하거나 정복한 것이 아니며, 예수님이 시대에 앞서 모든 것을 새롭게 성취하신 것입니다. (대성전, 바실리카)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천년기에 일관되게 보여준 시대를 초월한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슬프게도 두 번째 천년기에 이루어진 스페인의 식민지화 선교에 의해 대개 가려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도전은 항상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루는 복음화야 말로,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자 의무입니다. 그 도전은 호주 공의회를 초월하여, 우리가 사는 호주의 시공간 안에 가장 "향기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복음화)는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고려해야 할 공동 분별의 주제가 됩니다.

최근(2019년 3월) 젊은이들에게 반포하신 사도적 권고(Christus Vivit)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공동 분별력에 대한 적절한 조언을 하십니다(n.291-298). 이는 자기 성소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지만, 예수회 교황님이 개개인에게 제공하는 세가지 종류의 감성은 우리 모두가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하느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는 교황님의 말씀과, 듣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개개인에게 부여된 첫번째 감도(sensitivity)에 대해 말합니다.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공유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보면,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 안에 들어오십니다(루카 24,13-35).

두 번째 감도는 분별력으로 표현됩니다. “그것은 은총 혹은 유혹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n.293).” 그것은 성령께서 분명하게 “악령의 덫에 걸렸을 때... 필요한 것은 용기와 따뜻함과 재치이다”라는 말씀을 제대로 식별해내는 것입니다.

세 번째 감도는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지 인식하는 것”(n.294)입니다. 이는 궁극적인 의도를 분별하는 문제입니다. 단순한 생각이나 느낌보다 더 고차원적입니다.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을 분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 모든 관심은 믿음의 여정 안에 서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우리 공의회가 갖는 본래의 의미입니다.

호주 주교들은 며칠간 가톨릭/그리스도교라는 배경 안에서 공동체의 분별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피정을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호주의 미래 복음화를 위해 “무엇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를 분별하는 가운데, 이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BY the time you read this message the bishops of Australia would be soon returning to Australia after our Ad Limina Apostolorum visit to Rome. I wrote to you about this in the last edition of Catholic Voice (June 2019).

No doubt one of the predominate encouragements we would have received is to evangelise the Good News of Jesus Christ and the Kingdom of God in Australia no matter what challenging sociocultural situation is presented to us all.

Especially since the Second Vatican Council (1962-1965), the Catholic Church has entered a golden age of teaching on evangelisation. Incredibly, there are still many, however, who are suspicious of even this term. It seems to connote for them some form of imposing the Catholic Faith on others (proselytism).

In fact, Catholic evangelisation is the exact opposite of this. It PROPOSES Jesus in season and out of season to the world but never IMPOSES.

Recent Popes teach that evangelisation proposes Christ “by attraction” more than words. In a sense, we “perfume” the world with the fragrance of Jesus. As St Paul proclaims, “To God we are the fragrance of Christ” (2 Cor 2/15). To St Francis of Assisi (1181-1226) is attributed the following helpful expression: “Preach Jesus and, if necessary, use words”.

In Rome itself you can observe this wordless evangelisation even by making a pilgrimage to the major basilicas as the Bishops of Australia have so recently done. Here architecture evangelises our eternal Christian mysteries.

For example, there is St Peter’s Basilica built on top of a cemetery on Vatican Hill housing the tomb of St Peter. It is also built on the top of a major entertainment arena of the Roman Empire (the Circus of Nero) where brutal games were played and Christians executed (including St Peter). The only object still visible from these times till now is the giant Egyptian obelisk in the centre of St Peter’s Square.

Like an “eye” silently observing thousands of years of human activity (built around 2,500 BC), it is placed on a plinth upon which is written that Christ overcomes all and reigns forever! A Cross is placed on its top. What an everlasting message of salvation! An obelisk that evangelises on such an historic site for Christians!

Also, so many of the Churches of Rome are built upon marble taken from the ancient ruins of the Roman Empire. These basilicas too are often actually built upon the ruins of temples to pagan gods. Often pagan temples were not to be destroyed but converted to Christian use (eg. The Pantheon over the Temple of all gods, and Santa Maria Sopra Minerva over the Temple to the Egyptian goddess, Isis).

These are wordless proclamations, not that Christianity has imposed herself and conquered, but that Jesus fulfils all that has gone before Him.  It is a timeless message of evangelisation that was consistently showcased in the first millennium of Christianity. With the Spanish colonial evangelisations of the second millennium, this approach was, sadly, often eclipsed.

The challenge for Christians always is not to decide whether or not we ought to evangelise. To evangelise by sharing with everyone our saving encounters with Jesus our Lord and Saviour is our greatest joy and duty.

The challenge is to find the most “fragrant” method of evangelisation for our time and place in Australia during our Plenary Council period and beyond.

Ultimately, it becomes a matter of communal discernment for us all to consider at this time.

In his recent Apostolic Exhortation (March 2019) to young people, Christus Vivit (Christ Lives), Pope Francis offers timely advice on communal discernment (n.291-298). It is directed to young people considering their vocational calling. However, the three kinds of sensitivities that the Jesuit Pope offers to individuals can help us all discern God’s will in a communal manner. It is based, states the Holy Father, on our ability to listen.

Pope Francis writes of the first sensitivity directed to the individual. There must be a willingness to listen. This requires time and giving “space” to whatever is shared. The biblical example of Jesus with the disciples on the way to Emmaus comes to mind (Luke 24/13-35).

The second sensitivity is marked by discernment. “It tries to grasp where grace or temptation is present” (n.293). It tries to discern what the Holy Spirit is saying as distinct from “the traps laid by the evil spirit… it takes courage, warmth and tact.”

The third sensitivity  concerns “to perceive what is driving” us (n.294). It is a matter of discerning ultimate intentions. It is deeper than mere thoughts or feelings. It is the challenge to discern “what is most pleasing to the Lord”.

All of this concerns accompanying each other on the journey of faith – the real meaning, surely, of what our Plenary Council is all about.

The Bishops of Australia spent some generous days together in retreat considering what communal discernment is all about in our Catholic/Christian context. Let us all consider this vital topic together as we discern “what is pleasing to the Lord” for the future evangelisation of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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