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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15 00:02
연중 제25주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707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5,6-9
 6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7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1,20ㄷ-24.27ㄱ
 형제 여러분, 나는 20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21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22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27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영국의 뛰어난 미술 평론가이자 사회 사상가인 러스킨은 연민과 도덕이 결여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개인과 사회에 가져오는 큰 해악을 격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오늘 들려주시는 비유에 깊은 감명을 받고, 이 비유의 정신이야말로 효율성을 앞세워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당시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열쇠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려 한 네 편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면서 오늘 복음의 한 구절을 따와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 책은 인도의 간디의 삶과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 하나를 대할 때 이를 직감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인류의 마음을 지배해 온 갖가지 망상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기묘한, 어쩌면 가장 명예롭지 못한 망상은, 사회적 행동의 규범은 사회적 애정의 작용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결정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른바 경제학이라는 근대의 학문일 것이다.”
러스킨은 ‘세상의 셈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셈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사회는 점점 더 비인간화로 치달으면서 인간성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예언자적 직관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셈법은 사람을 소모품이자 이윤을 내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경제학’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오늘 비유는 예수님 시대나 러스킨 시대보다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더욱 깊이 묵상해야 할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만큼 ‘세상의 셈법’에 젖어 있던 적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의 잘못된 통념에서 우리의 생각을 되돌리는 ‘회심’의 여정입니다. 오늘 복음은 일자리를 잃거나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가운데 인격적 존엄을 침해받는 이웃의 처지를 대할 때, 경제 논리가 아니라 연민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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